2019 예술공간 영주맨션 기획초대전
<실패하면 실패하지 않는다고 사라지면 사라지지 않는다고> 박자현 개인전
_ z : 관리인 이봉미 <방과 방을 나누는 얇고 연약한 막들>
방은 사전적으로 사람이 살거나 일을 하기 위해 벽 따위로 막아 만든 칸입니다. 방은 작가에게 몸을 누이는 개인의 방(room)에서 재개발과 기지촌처럼 사회의 방(society)으로 은유됩니다. 작가의 방들은 연결되어 있고, 벽은 얇고 연약한 막으로 되어 있습니다. 얇은 막은 옆방의 소리를 들을 수 있게 합니다. 작가가 기록하고 작업한 수많은 ‘방’들은 <달방>에서 형식적으로 변화됩니다.
작가의 방은 곰팡이 핀 식물이 담긴 작고 네모난 비닐(지퍼팩)에서 시작합니다. 공기가 통하지 않아 썩어가는 식물을 담은 그 방(지퍼팩)은 무수한 점들로 그려진 인물들이 앉아 있는 방(캔버스)과 맞닿습니다. 고통을 울부짖지 않는 식물처럼 무표정한 인물은 지퍼팩에 담긴 식물과 다르지 않습니다.
우유를 얼굴에 붓고 흰 담배연기를 뿜는 그들은 점으로 그려져 캔버스의 여백(공간)과 경계지어지지 않습니다. 점과 점 사이의 공간이 캔버스의 여백과 섞이며 공간에 앉아있는, 존재하는 방식으로 그려졌습니다. 공간에 대한 작가의 관심이 이때 부터였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.
“2004년 처음 점묘를 고시원에서 그렸어요. 사각의 폐쇄 공간이 고시원에 다닥다닥 붙어있죠. 소리는 들리지만 분절되어 있는 고시원을 생각하며 <달방> 작업을 했어요”. 작업은 <달방>을 계기로 형식적으로 변화합니다. 작가에게 네모난 캔버스가 걸리는 전형적인 전시장은 더 이상 의미가 없어지죠. <달방>은 예약을 해서 사용하는 개인의 공간이 되었다가 함께 하는 공유의 공간이 되며 분절과 개별이 섞인, 점유되지 않는, 누구를 위하면서도 누구도 위하지 않는 방이 됩니다.
작가는 기지촌에 있었던 방에, 더 이상 사람이 살지 않아 쓰레기가 가득한 그 곳에, 새들의 먹이로 “나는 내가 없다고 생각해요”를 썼습니다. 이는 조건만남을 하는 동안 인격이 증발되었다고 느꼈던 탈 성매매 여성의 목소리입니다. 이 문장은 전시기간동안 날아든 새들에 의해 서서히 사라졌습니다.
작가의 작업은 그가 부딪히며 기록한 그의 공간에서 출발되었습니다. 그의 작업을 방으로 비유한 것도 공간적 관심을 토대로 하기 때문입니다. 개인에서 사회로 확장된 작가의 관심은 빈 방을 채우듯 작가가 겪은 일련의 사건들과 행위들로 기록되었습니다. <달방>작업을 이야기하는 그에게서 방들을 구분 짓는 건 두꺼운 벽이 아니라 얇은 막으로 비유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. 작가가 채운 방들은 소리가 타고 흐르는 얇은 막으로 나누어져 있어 옆방의 존재를 인식할 수 있게 합니다. 그래서 살아있는, 소리를 내는 존재들을 잊지 않고 기억하게 합니다.